알리익스프레스에서 쇼핑할 때마다 3.5mm 이어폰을 USB-C에 연결하는 이른바 꼬다리를 하나씩 같이 구매했다. 2천원도 하지 않는 제품이 많았고, 하나쯤 있으면 쓸 일이 생길거란 생각에, 가격도 싸니 주문할 때마다 괜찮아 보이는 걸 하나씩 시도해봤다.
결과는 처참했다. 아무것도 재생하지 않는데 화이트 노이즈가 들리고, 음악을 틀면 뒤에 잡음이 따라붙었다. 막귀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느껴질 정도였다.
몇 번 실패한 뒤 ChatGPT의 도움을 받아 CX31993이라는 칩을 찾았다. 알리에서 대략 7천원 전후였다. 이전에 샀던 꼬다리들과 비교하면 꽤 비쌌지만 그래도 1만원이 되지 않았다. 하나를 사서 들어보니 정말 내가 원하던 소리가 나왔다. 특별히 화려해진 느낌보다 잡음이 사라지고 그냥 깨끗하게 들렸다.
칩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CX31993은 Conexant에서 나온 AudioSmart 계열의 USB 오디오 코덱이다. Conexant는 이후 Synaptics에 인수됐다. 이 칩 계열의 분해 자료를 보면 내부에 ARM Cortex-M0+ 마이크로컨트롤러가 들어간다. 같은 AudioSmart 계열인 CX31988 역시 DAC, ADC, 마이크 입력과 헤드폰 출력단을 하나의 칩 안에 묶은 구조다.
ARM 코어가 음악을 일일히 계산해서 소리로 변환한다는 뜻은 아니다. Cortex-M0+ 칩은 관리자 역할을 한다. 기기와 USB로 연결됐을 때 자신을 오디오 장치로 인식시키고, 재생 상태와 볼륨, 마이크, 전원과 클럭 같은 주변 동작을 관리한다. 실제 오디오 데이터는 전용 하드웨어 경로를 통해 움직인다.
| 단계 | 내부에서 하는 일 |
|---|---|
| USB 인터페이스 | 스마트폰에서 PCM 오디오 데이터를 받음 |
| Cortex-M0+ | USB 연결, 제어 명령, 전원과 장치 상태를 관리 |
| 디지털 오디오 경로 | 받은 샘플을 버퍼링하고 DAC가 처리할 흐름으로 전달 |
| DAC | 숫자로 된 오디오 샘플을 연속적인 아날로그 전압으로 변환 |
| 아날로그 출력단 | 신호를 이어폰을 울릴 수 있는 수준으로 내보냄 |
| ADC 경로 | 4극 이어폰의 마이크 신호를 반대로 디지털화 |
결국 7천원짜리 꼬다리 안에 작은 컴퓨터와 사운드카드를 같이 집어넣은 셈이다. USB 통신을 처리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와 실제 소리를 만드는 DAC, 이어폰을 구동하는 아날로그 회로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다.
이 구조가 저가형 수동 젠더와 가장 크게 갈리는 부분이다. 스마트폰은 CX31993에 음악 데이터를 디지털 상태로 넘긴다. 아날로그 신호는 꼬다리 안에서 만들어진다. 스마트폰 내부의 복잡한 전원과 RF 회로 사이에서 약한 아날로그 신호를 길게 끌고 갈 이유가 없다.
내장 3.5mm 단자보다 좋을까?
과거 스마트폰에 들어가던 3.5mm 출력과 비교하면 스펙상으로는 CX31993 쪽이 더 좋다.
아이폰 6s에는 Apple/Cirrus Logic 338S00105 오디오 코덱이, 갤럭시 S6에는 Wolfson WM1840 계열 오디오 코덱이 들어갔다. 당시 플래그십답게 둘 다 노이즈와 왜곡이 낮았고, 일반적인 이어폰을 울리기에는 충분히 좋은 출력이다.
CX31993 기반 동글은 이보다 더 낮은 노이즈와 왜곡, 낮은 출력 임피던스를 구현할 수 있다. 회로가 스마트폰 내부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단자 밖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점도 전원이나 무선 통신 회로에서 발생하는 간섭을 줄이는 데 유리하다. 측정값만 놓고 보면 CX31993이 스마트폰의 내장 3.5mm 출력보다 한 단계 좋은 성능을 낸다.
내장 포트의 출력도 이미 인간이 체감하기 힘들 만큼 노이즈와 왜곡이 낮은 수준이다. CX31993의 측정 성능이 더 좋아도 정상적인 음원과 일반적인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그 차이를 구분하기는 사실상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7천원으로 끝난 꼬다리 찾기
처음에는 무슨 차이가 있겠나 싶었다. 그래서 가장 싼 것부터 샀고 계속 실패했다.
CX31993은 7천원 정도였다. 앞서 산 것들보다 몇 배 비쌌지만, 처음부터 이걸 샀으면 오히려 돈을 덜 썼을 것이다.
내장 3.5mm 단자에 제대로 된 오디오 코덱이 들어 있던 시절에는 이런 물건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다. 이어폰 단자가 사라지면서 그 회로가 스마트폰 밖의 작은 꼬다리로 이동했다.
CX31993은 그 역할을 싸고 제대로 해준다. 내가 필요했던 것도 딱 그 정도였다.